DNA는 왜 핏속을 떠다닐까? 1948년 발견에서 NIPT·액체생검까지, cfDNA 70여 년 이야기
목차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 혈액 속에 왜 세포 밖 DNA(cfDNA)가 떠다니는지
- 1948년 첫 보고부터 NIPT, 암 액체생검까지 어떤 발견이 이어졌는지
- 오래 묻혀 있던 발견이 왜 갑자기 쓸모를 얻었는지
🩸 피 속을 떠다니는 DNA
DNA는 보통 세포의 핵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는 매일 엄청난 수의 세포가 죽고 새로 만들어지고, 죽는 세포가 남긴 DNA 조각 일부가 혈액으로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세포유리 DNA(cfDNA, cell-free DNA)입니다.
이 조각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어디서 오나: 건강한 사람의 cfDNA는 대부분 혈액세포에서 옵니다. 메틸화 지도로 출처를 추정한 연구에서는 백혈구가 약 55%, 적혈구가 되기 전의 세포가 약 30%, 혈관 내피세포가 약 10%, 간세포가 약 1%였습니다1. 그래서 암이나 태아, 이식 장기에서 나온 DNA는 이 ‘배경’ 속에 섞인 아주 적은 양입니다.
- 한 크기에 몰려 있습니다: 세포가 죽을 때 DNA는 히스톤 단백질(뉴클레오솜)에 감긴 단위로 잘려, 약 166 bp 길이에 몰립니다2. 세포 사멸(아폽토시스)과 괴사에서 나온다는 증거도 일찍 제시됐습니다3.
- 금방 사라집니다: 출산 뒤 엄마 혈액 속 태아 DNA는 평균 약 16분마다 절반으로 줄었고, 2시간이면 대부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4. 그래서 cfDNA는 ‘지금’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춥니다.
이 원리는 진단 기초 시리즈 1편과 진단 기초 시리즈 6편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번 글은 이 DNA가 어떻게 발견되고 진단 도구가 됐는지 따라가 봅니다.
📜 1948년: 아무도 쓸 곳을 몰랐던 발견
1948년 프랑스의 Mandel과 Métais는 사람 혈장에 핵산이 들어 있다는 짧은 보고를 냈습니다5.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기(1953년) 5년 전의 일입니다. 세포 밖에서 DNA가 떠다닌다는 사실은 새로웠지만, 이를 어디에 쓸 수 있을지는 오랫동안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주목받은 계기는 질병이었습니다. 1966년 전신홍반루푸스 환자의 혈청에서 DNA와 이에 대한 항체가 보고됐고6, 1977년 Leon 등은 암 환자의 혈청 DNA 농도가 평균적으로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당시 측정법으로 건강인 평균은 약 13 ng/mL, 암 환자는 약 180 ng/mL였습니다. 하지만 암 환자의 절반은 정상 범위와 겹쳐, 저자들도 진단 도구로서의 가치는 낮게 봤습니다. 대신 이 연구는 방사선 치료를 앞둔 암 환자들을 따라가며, 치료 뒤 농도가 내려가면 치료에 반응한 것으로, 계속 높으면 예후가 나쁜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저자들은 이 검사를 치료 경과를 살피는 도구로 제안했습니다7. 이 시기의 측정은 양만 잴 수 있었고, 양만으로는 그 DNA가 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 1989~1994년: 암의 ‘DNA 지문’을 찾다
전환점은 cfDNA의 내용을 읽기 시작하면서 왔습니다. 1989년 Stroun 등은 암 환자 혈장 DNA 일부가 암세포 DNA의 성질을 띤다는 것을 보고했습니다8. 1994년에는 두 연구팀이 혈장에서 실제 암 돌연변이를 찾아냈습니다. 췌장암 환자의 혈장에서 KRAS 돌연변이가9, 골수이형성증후군·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 10명 중 5명의 혈장에서 NRAS 돌연변이가 검출됐습니다10.
“혈액 속 DNA 중 일부는 암에서 왔고, 그 DNA에는 암의 돌연변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날 ctDNA(순환 종양 DNA) 검사의 기본 생각이 이때 자리 잡았습니다.
👶 1997년: 엄마 혈액 속 태아 DNA
당시 영국 옥스퍼드대에 있던 Dennis Lo(이후 홍콩중문대) 연구팀은 이 생각을 임신에 적용했습니다. 암세포가 혈액에 DNA를 흘린다면, 태반도 그렇지 않을까? 1997년 이 연구팀은 남자 아기를 임신한 산모 30명 중 24명(80%)의 혈장에서 Y 염색체 DNA를 찾아냈습니다. 여자 아기를 임신했거나 임신하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11. 엄마 몸에는 Y 염색체가 없으니, 이 DNA는 태아(정확히는 태반) 쪽에서 온 것입니다.
이듬해 같은 연구진은 엄마 혈장 DNA 중 태아 DNA가 임신 초기 약 3.4%, 후기 약 6.2%를 차지한다고 측정했고12, 신장·간 이식 환자의 혈장에서는 기증자 DNA를 찾아냈습니다13. 혈액 속에 ‘다른 사람의 DNA’가 섞여 있다는 같은 원리가, 각각 산전 검사와 이식 감시 검사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 2008년: 시퀀싱이 문제를 풀다
태아 DNA를 찾는 것과 태아의 염색체 이상을 판별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태아 DNA는 엄마 DNA 사이에 섞인 일부일 뿐이고, 다운증후군(21번 염색체 3개)을 알려면 21번 염색체 조각이 아주 조금 더 많은지를 정밀하게 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한 것은 2000년대 중반에 나온 대규모 병렬 시퀀싱(NGS)이었습니다. 수백만 개의 DNA 조각을 한꺼번에 읽어 각 조각이 어느 염색체에서 왔는지 세면, 미세한 양 차이도 통계적으로 잡아낼 수 있습니다. 2008년 미국 스탠퍼드의 Quake 연구팀(10월)14과 홍콩중문대의 Lo 연구팀(12월)15이 각각 독립적으로 이 방법을 발표했습니다. 2011년에는 미국에서 첫 상용 NIPT가 출시됐습니다. 같은 시기 발표된 국제 검증 연구(고위험 임신부 대상)에서 다운증후군 검출률은 98.6%(212건 중 209건), 위양성률은 0.2%였습니다16. NIPT가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진단 기초 시리즈 3편에서 다뤘습니다.
암 분야에서도 2008년, 대장암 환자의 혈액 속 ctDNA가 수술과 항암치료에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을 추적한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 연구는 시퀀싱이 아니라 디지털 PCR 계열 기술을 썼습니다17. 이는 진단 기초 시리즈 5편에서 다룬 MRD 검사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 뜻밖의 발견: NIPT가 엄마의 암을 비추다
NIPT가 널리 쓰이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염색체 개수 이상(이수성)이 여러 개 동시에 나오는 등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 중 일부에서 엄마에게 숨은 암이 발견된 것입니다. NIPT 125,426건을 분석한 연구에서 이수성 양성 결과 3,757건 중 산모의 암으로 확인된 경우는 10건(약 0.3%)이었고, 여러 염색체에 이상이 함께 나온 39건 중에서는 7건(18%)이 암이었습니다18.
즉 NIPT 이상 결과가 암을 뜻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상 결과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므로, 이런 결과를 받았다면 먼저 확진 검사와 유전상담을 받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래도 이 연구는 “혈액 속 DNA에서 숨은 암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 사례로 보여 줬습니다. 이후 다중암 조기진단 검사 연구에 영감을 준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 2014년 이후: 연구실에서 진료실로
- 어느 암에서 잘 보이나: 2014년 640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진행암 환자는 여러 암종에서 75% 넘게 ctDNA가 검출됐지만, 뇌·신장·전립선·갑상선암은 50% 미만이었습니다. 국소암에서는 검출률이 더 낮았습니다(예: 췌장 48%, 유방 50%)19. 암의 종류와 병기에 따라 혈액에 흘리는 DNA 양이 크게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 어느 조직에서 왔나: 2015년에는 DNA 메틸화 패턴으로 cfDNA의 출처 조직을 추정하는 연구가 발표됐습니다20. 2016년에는 cfDNA가 끊어진 위치(뉴클레오솜 발자국)로도 출처를 추정할 수 있음이 보고됐고21, 2018년에는 25종 조직·세포의 메틸화 지도가 정리됐습니다1. 다중암 검사가 ‘어느 장기의 암인지’ 추정하는 것도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합니다.
- 진료 승인: 2016년 6월 미국 FDA는 비소세포폐암에서 혈장으로 EGFR 돌연변이를 확인하는 PCR 기반 검사를 승인했습니다. FDA가 승인한 첫 액체생검 검사였고, 혈액에서 돌연변이가 안 나오면 조직검사를 하도록 했습니다22. 2020년 8월에는 여러 유전자를 한꺼번에 읽는 NGS 기반 액체생검 동반진단(특정 표적치료제를 쓸 환자를 고르는 검사) 2종이 승인됐습니다2324.
🤔 왜 50년이나 걸렸을까
돌아보면 cfDNA 진단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측정 기술이었습니다. 물론 생물학적 이해, 임상 검증, 비용과 제도도 함께 갖춰져야 했습니다.
| 시기 | 할 수 있었던 일 | 한계 |
|---|---|---|
| 1948~1980년대 | 혈액 속 DNA의 양 재기 | 어디서 왔는지 모름 |
| 1990년대 | PCR로 특정 서열 찾기(돌연변이, Y 염색체) | 미리 알고 있는 표적만 찾을 수 있음 |
| 2008년 이후 | NGS로 수백만 조각을 한꺼번에 읽고 세기 | 비용·해석, 아주 적은 양의 검출 한계 |
양에서 서열로, 서열에서 대량 계수로 넘어갈 때마다 새 용도가 열렸습니다. 지금 연구되는 메틸화, 조각 길이·끝 모양(프래그멘토믹스) 분석도 같은 흐름의 다음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새 분석법이 나왔다는 것과 그 검사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그 차이는 진단 기초 시리즈 4편에서 본 것처럼 숫자를 따져 봐야 알 수 있습니다.
🙋 그래서 나에게는?
- 지금 우리가 받는 NIPT, 암 표적치료 전 혈액 유전자 검사, 이식 감시 검사는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혈액 속에 섞인 ‘다른 출처의 DNA’를 찾아 세는 검사입니다.
- 그래서 한계도 비슷합니다. 찾는 DNA의 양이 너무 적으면(초기 암, 임신 초기, 산모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경우25 등) 놓칠 수 있고, 다른 원인으로 늘어난 DNA가 결과를 흔들 수 있습니다.
- NIPT 고위험 결과는 양수검사 같은 확진 검사로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로 혈액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고 해서 ‘암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 이 글은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검사 선택과 결과 해석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 자주 묻는 질문
Q. 건강한 사람 혈액에도 cfDNA가 있나요? A. 네. 건강한 사람도 매일 세포가 죽고 새로 생기므로 늘 일정량이 있습니다. 대부분 혈액세포에서 나온 것입니다.
Q. 아프면 cfDNA가 늘어나나요? A. 늘어날 수 있습니다. 1960~70년대부터 암뿐 아니라 루푸스 같은 질환에서도 혈액 속 DNA가 보고됐습니다6. 그래서 오늘날 검사는 양보다 그 안의 돌연변이, 메틸화, 출처를 봅니다.
Q. 출산 후에도 아기 DNA가 엄마 혈액에 남나요? A. 엄마 혈장 속 태아 cfDNA는 출산 후 약 2시간이면 대부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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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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