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되지 않는 미생물을 DNA로 찾을 수 있을까? 영구동토와 심해의 미생물 유전체 이야기
목차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 배양접시에서 자라지 않는 미생물을 DNA로 어떻게 찾아냈는지
- 섞인 DNA에서 한 생물의 유전체를 골라내는 방법과 그 한계
- 심해 진흙과 영구동토에서 나온 발견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흙 한 줌이나 바닷물 한 방울을 현미경으로 보면 미생물 세포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료를 배양접시에 바르면 자라는 집락(colony)은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자라지 않는 다수는 어떤 생물일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 DNA로 답해 온 과정을 따라갑니다.
🌳 1977년: 리보솜 RNA로 다시 그린 생명의 갈래
모든 세포에는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이 있고, 그 안에 리보솜 RNA(rRNA)가 들어 있습니다. rRNA는 아주 천천히 변해서, 서열을 비교하면 먼 친척 관계까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1977년 미국의 칼 워즈(Carl Woese)와 조지 폭스(George Fox)는 rRNA를 비교해 생물이 세 갈래로 나뉜다고 보고했습니다. 일반 세균, 메탄생성균을 포함한 고균(당시 이름은 archaebacteria), 그리고 진핵생물의 조상 계통입니다1. 1990년 워즈는 오토 칸들러(Otto Kandler)·마크 휠리스(Mark Wheelis)와 함께 이 세 갈래를 세균(Bacteria)·고균(Archaea)·진핵생물(Eucarya)이라는 세 ‘도메인’으로 정리하자고 제안했습니다2.
워즈의 연구 이후 세균·고균의 rRNA 가운데 작은 단위인 16S rRNA, 그리고 이를 만드는 16S rRNA 유전자가 미생물의 ‘신분증’처럼 쓰이게 됩니다.
🧫 1985~2002년: 배양접시 밖의 다수를 16S로 세다
1985년 미국의 제임스 스탤리(James Staley)와 앨런 코노프카(Allan Konopka)는 현미경으로 센 세포 수와 배양접시의 집락 수가 크게 다른 현상을 ‘거대한 평판 계수 이상(great plate count anomaly)‘이라고 불렀습니다34. 같은 해 노먼 페이스(Norman Pace) 연구팀은 16S rRNA의 보존된 부위를 시작점으로 삼아, 유전자를 따로 클로닝하지 않고도 800~1,000개 염기 길이의 서열을 빠르게 읽는 방법을 발표했습니다5.
1990년 스티븐 지오바노니(Stephen Giovannoni) 연구팀은 대서양 사르가소해의 바닷물 미생물에서 PCR(특정 DNA 구간을 수백만 배로 늘리는 방법)로 16S rRNA 유전자를 늘려 읽었습니다. 저자들은 바다에서 직접 계수와 평판 계수의 차이가 대개 몇 자릿수에 이른다고 적었습니다. 읽어 낸 서열에서는 SAR11이라는 새 무리가 많이 나왔고, 남세균 계열 서열도 나왔지만 비슷한 환경의 배양 남세균과 일치하는 것은 없었습니다6. 1990년대에 걸쳐 페이스 연구팀 등도 이런 분자계통 방법을 여러 자연 시료에 바로 적용해, 예상하지 못한 계통을 여럿 찾았습니다7.
SAR11은 그 뒤 바닷물에서 확인된 rRNA 유전자의 26%를 차지할 만큼 흔한 무리로 드러났지만, 오랫동안 배양되지 않았습니다. 2002년 지오바노니 연구팀은 영양분이 아주 적은 배지에 바닷물을 희석해 넣는 방식으로 SAR11 배양에 성공했습니다. 세포 부피가 약 0.01 µm³로, 배양된 자유생활 세포 가운데 가장 작은 축이었습니다8. 배양 없이 DNA로 처음 찾아낸 무리 가운데 하나가 12년 뒤에야 배양된 셈입니다.
🌊 2004년: 섞인 DNA를 통째로 읽다
16S 조사는 ‘누가 있는지’는 알려 주지만, 그 생물이 어떤 유전자를 갖고 무엇을 하는지는 알려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료의 DNA 전체를 잘게 잘라 무작위로 읽는 샷건(shotgun) 메타게놈 분석이 나왔습니다. 메타게놈은 한 환경에 섞여 있는 모든 생물의 유전체를 한꺼번에 가리키는 말입니다.
2004년 크레이그 벤터(J. Craig Venter) 연구팀은 지오바노니 연구팀이 조사했던 것과 같은 사르가소해의 바닷물을 필터로 걸러 DNA를 읽었습니다. 중복을 뺀 서열이 약 10억 4,500만 염기쌍이었고, 연구진은 이것이 최소 1,800개 유전체 종에서 왔으며 새 유전자가 120만 개 넘게 들어 있다고 추정했습니다9. 같은 해 질리언 밴필드(Jillian Banfield) 연구팀은 강한 산성 광산 배수에 자란 생물막의 DNA를 읽어, 거의 완전한 유전체 2개와 부분 유전체 3개를 복원했습니다. 이 생물막은 소수의 종이 우세해서 유전체를 다시 맞추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10.
환자의 혈액이나 척수액에서 병원체를 찾는 임상 검사도 같은 원리를 씁니다. 그 이야기는 메타게놈 시퀀싱(mNGS) 검사 글에서 다뤘습니다.
🧩 2015~2016년: 섞인 조각에서 유전체를 골라내 새 가지를 그리다
샷건으로 읽은 짧은 조각(리드)은 먼저 긴 조각으로 이어 붙이고(조립), 다음으로 염기 조성이나 시료 사이 양의 변화가 비슷한 조각끼리 묶습니다. 이 묶기를 빈닝(binning)이라 하고, 그렇게 얻은 유전체를 메타게놈 조립 유전체(MAG)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본 2004년 밴필드 연구팀의 생물막 연구가 이 방식의 초기 사례였습니다10. 긴 리드는 반복 서열을 건너 조각을 길게 이어 주기 때문에 섞인 시료의 조립에 도움이 되는데, 그 기술은 PacBio 기업 탐방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 2015년 5월, 로키의 성 근처 진흙: 아냐 스팡(Anja Spang)과 타이스 에테마(Thijs Ettema) 연구팀은 북극 중앙해령의 열수 분출구 ‘로키의 성(Loki’s Castle)‘에서 약 15 km 떨어진 해저 3,283 m 퇴적물을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복원한 새 고균 문(phylum, Lokiarchaeota)의 복합 유전체(가까운 여러 세포의 DNA 조각을 모은 유전체) ‘Lokiarchaeum’은 계통 분석에서 진핵생물과 한 묶음을 이뤘고, 진핵세포의 특징으로 여겨지던 단백질의 유전자를 여럿 갖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는 진핵생물이 고균 안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두 도메인’ 가설을 뒷받침합니다11.
- 2015년 6월, 세균의 15% 넘는 무리: 밴필드 연구팀은 35개 넘는 문에 걸친 세균 유전체 797개(완전 8개, 초안 789개)를 복원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유전체가 작았고, 대부분은 여러 물질을 스스로 만드는 경로가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무리가 세균 도메인의 15% 넘게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 후보 문 방산(CPR, candidate phyla radiation)이라 불렀습니다. 16S 서열도 많이 달라서, 일반적인 16S 조사로는 특정 문의 50~100%를 놓칠 수 있었습니다12.
- 2016년, 새로 그린 생명의 계통수: 같은 연구 그룹은 배양되지 않았거나 덜 알려진 생물 1,000개 이상의 새 유전체를 더해 계통수를 다시 그렸습니다. 그 나무에서는 세균의 다양성이 두드러졌고, 큰 가지 상당 부분을 분리 배양된 대표가 없는 생물이 차지했습니다13.
🔬 2020년: 12년 걸린 아스가르드 고균 배양
2017년 에테마 연구팀은 Lokiarchaeota와 그 친척인 Thor·Odin·Heimdallarchaeota를 한데 묶어 아스가르드(Asgard) 고균이라고 불렀습니다14. 하지만 이 무리는 여전히 유전체로만 알려져 있었고, 실제 세포를 키워 본 사례는 없었습니다.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의 이마치 히로유키(Imachi Hiroyuki) 연구팀은 2006년 5월 유인 잠수정 신카이 6500으로 난카이 해곡의 해저 2,533 m 메탄 용출지에서 퇴적물을 떠 왔습니다. 생물반응기에서 오래 미리 키운 뒤 시험관에서 7년을 더 농축해, 모두 12년 만에 아스가르드 고균을 메탄생성균과 함께 사는 상태로 분리했습니다15.
이 고균은 지름 약 550 nm의 작은 공 모양이었고, 아주 느리게 자라며 다른 미생물과 영양을 주고받는 공생(syntrophy) 방식으로 아미노산을 분해했습니다. 아스가르드 고균에 진핵세포 같은 내부 구조가 있을 수 있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배양된 세포에서는 세포소기관 같은 구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고 갈라진 돌기가 있었습니다15. 202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 크리스타 슐레퍼(Christa Schleper) 연구팀 등이 2015년 Lokiarchaeum 유전체와 같은 속의 새 종 ‘Ca. Lokiarchaeum ossiferum’(Ca.는 아직 정식 학명이 아닌 후보 이름이라는 뜻의 Candidatus 약자)을 고도로 농축 배양해, 세포 몸통과 돌기 전체에 액틴 계열 단백질로 된 세포 골격이 뻗어 있는 모습을 처음 영상으로 보여 줬습니다16.
같은 해 에테마 연구팀 등의 계통 분석은 진핵생물이 아스가르드 고균 안쪽에서 갈라졌으며, 그중 한 강(class)인 Heimdallarchaeia에 새로 제안된 목(order) Hodarchaeales와 가장 가까운 자매 관계라고 보고했습니다17. 다만 계통 분석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논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 2021~2023년: 영구동토 속 미생물과 ‘되살아난’ 생물
영구동토는 2년 이상 연속으로 0°C 이하로 얼어 있는 땅입니다. 얼어 있는 흙 속 DNA로 옛 생태계를 읽는 방법은 고대 DNA 이야기에서도 다뤘습니다.
- 2021년, 얼어 있는 흙의 MAG: 미국·러시아 연구진은 시베리아 콜리마-인디기르카 저지에서 새로 뚫은 영구동토(깊이 3.5~20 m, 약 2만~100만 년 동결)에서 MAG 33개를 얻었고, 그중 8개가 80% 이상 완전하고 오염 10% 미만이었습니다(아래 ⚠️의 국제 기준 MIMAG로는 중간 품질). 이 유전체들에는 영구동토 밖의 같은 무리보다 막 안정화·삼투 스트레스 대응 유전자가 많아, 언 흙 속 얇은 소금물 막에 적응한 흔적으로 해석됐습니다18.
- 2023년 2월, 아메바 바이러스: 장미셸 클라베리(Jean-Michel Claverie) 등 국제 연구팀은 시베리아 영구동토 등에서 아메바를 감염하는 바이러스 13종을 분리해 보고했고, 가장 오래된 시료는 4만 8,500년 이상 된 층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사람이나 동물이 아닌 아메바만 감염하는 바이러스를 고르는 방식을 써서, 작물·동물·사람에 대한 위험을 배제했다고 밝혔습니다19. 저자들은 초록에서 ‘좀비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쓰며 이런 사례가 드물다는 인식이 틀렸다고 주장했지만, 되살린 것은 모두 아메바 바이러스였습니다.
- 2023년 7월, 4만 6천 년 된 선충: 콜리마강 유역 지표 약 40 m 아래의 플라이스토세 설치류 굴 화석에서 나온 선충이 다시 움직였다는 보고에 이어, 연구진은 방사성탄소 연대로 약 4만 6천 년을 제시하고 유전체를 조립해 신종(Panagrolaimus kolymaensis)으로 기재했습니다. 이 선충은 대사를 거의 멈추는 휴면 상태(크립토바이오시스)로 버틴 것으로 해석됐습니다20.
⚠️ 한계와 주의
- MAG는 한 세포의 유전체가 아닙니다. 비슷한 여러 세포의 DNA 조각을 모은 복합체입니다. 2015년의 Lokiarchaeum도 92% 완전하고 1.4배 중복된 복합 유전체로 보고됐습니다. 시료에 함께 있던 가까운 균주 4~6개의 조각이 한데 섞여 같은 표지 유전자가 여러 벌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11. 그래서 국제 기준(MIMAG)은 MAG마다 완성도와 오염도를 밝히게 하며, 고품질 초안은 90% 넘게 완전하고 오염이 5% 미만이어야 하고, 16S·23S·5S rRNA 유전자와 tRNA 18종 이상도 갖춰야 합니다21.
- 영구동토의 MAG가 곧 살아 있는 미생물은 아닙니다. 얼어 있는 흙의 DNA는 이미 죽은 세포에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영구동토 MAG 연구진이 결론으로 제시한 것도 유전체를 조립할 만큼 품질 좋은 DNA가 남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18.
-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기능을 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유전체로 추론한 대사는 가설이고, 배양이나 활성 측정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아스가르드 고균의 배양 결과처럼 실제 세포가 예상과 다를 수 있습니다15.
- ‘되살아났다’는 주장은 오염 통제가 핵심입니다. 현대 생물이 시료에 섞이면 아주 오래된 생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선충 연구진도 채취 과정의 무균성과 연대 문제는 여러 총설에서 이미 다뤘다고 밝혔습니다20.
- ’○%만 배양된다’는 숫자는 환경마다 다릅니다. 16S 조사 자체도 서열이 많이 다른 생물을 놓칠 수 있습니다12. 이 글의 연표 역시 지금으로 이어진 성공 사례만 골라 단순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 지금 어디까지 왔나
- 바다: 2022년 연구는 배양·단일세포 유전체 약 1만 개에, 1,000개 넘는 해수 시료에서 새로 복원한 초안 유전체 2만 5천 개 이상을 더해 생합성 유전자 묶음 약 4만 개를 찾았습니다. 이 묶음이 특히 많은 한 무리(Ca. Eudoremicrobiaceae)는 배양된 적 없는 세균 문에 속했습니다22.
- 유전체 분류 데이터베이스: 원핵생물 유전체를 계통에 따라 분류하는 GTDB(Genome Taxonomy Database)의 10번째 판(2025년 4월)은 세균 유전체 71만 5,230개와 고균 유전체 1만 7,245개를 담았습니다. 세균 분류군의 70% 이상이 MAG 같은 환경 유전체로만 이뤄져 있고, 고균 유전체는 90% 가까이가 MAG입니다. 운영진은 큰 새 가지의 발견은 줄고 있지만 종의 95% 넘게는 아직 유전체가 없다고 추정했습니다23.
- 한국: 극지연구소 연구팀은 2024년 동시베리아해 퇴적물에서 MAG 211개를 복원했고, 그중 86%는 알려진 종으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24. 2025년에는 알래스카 툰드라 흙을 4°C에서 90일 녹이는 실험에서 감자 무름병 증상을 일으키는 Pseudomonas 균주를 분리해, 영구동토가 잠재적 식물 병원균의 저장고 구실을 한다고 보고했습니다25. 한국 연구진이 아스가르드 고균이나 CPR 세균을 새로 배양했다는 보고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 영구동토가 녹으면 옛 병원체가 돌아오나요? A. 4만 8,500년 넘은 층에서 아메바 바이러스가 되살아난 보고는 있지만, 연구진이 일부러 아메바만 감염하는 바이러스를 골랐습니다19. 이 글에서 다룬 연구들에서 사람 병원체가 되살아났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위험을 판단하려면 식물 병원균 실험25 같은 구체적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Q. 배양이 안 되면 그 미생물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아나요? A. 유전체에 어떤 대사 경로 유전자가 있는지 보고 추론합니다. 다만 이는 가설이며, 아스가르드 고균처럼 배양한 뒤에야 아미노산을 공생 방식으로 분해한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합니다15.
Q. 우리 몸에도 배양 안 되는 미생물이 있나요? A. 네. 2021년 사람 장내 미생물 유전체 모음은 4,644종을 담았고, 그중 70% 넘는 종에 배양된 대표 균주가 없었습니다26. 입안에서도 오래 배양되지 않던 CPR 계열 TM7(Saccharibacteria) 무리가 2015년에야 다른 세균에 붙어 사는 상태로 배양됐습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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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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